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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

서울대 출신도 '귀농'하면 이런 사람이 부러워



아이엠피터가 제주에 오면서 활동하는 카페가 있습니다. '제주에서 살기 위한 모임'(이하 제살모)인데, 이 모임에 가면 인기를 독차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목공 기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제주에 내려오는 인구가 많다 보니, 서울대는 물론이고 속칭 일류대에 해외 유학파, 의사, 회사 CEO 등 예전에는 정말 잘 나가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도 웬만해서는 목공 기술을 가진 귀농인의 인기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학식과 경력이 뛰어나도 귀농을 하면 시골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이때 농촌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이 기계 수리와 목공입니다.

특히 집을 수리하거나 지을 때, 또는 가구나 데크와 같은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 귀농 생활에서 목공기술은 귀농인들이 손꼽는 최고의 기술입니다.

 
' 손재주 없는 남편은 구박 박는 귀농'

귀농을 결심하고 내려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답답해하는 일이 '목공기술과 손재주'의 부재입니다. 목공기술이 있다면 귀농의 첫 번째 집짓기부터 무난하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돈 있으면 집을 사거나 건축하면 되지, 무슨 목공 기술까지 필요하냐고 하겠지만, 돈이 있어도 제대로 집을 짓기 어려운 곳이 농촌입니다.

가장 먼저 제대로 집을 짓는 건축 기술자를 구하기가 어렵거니와 소형 평수의 주택 건축은 잘 하지 않으려고들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술력이 떨어지거나, 속칭 속 썩이는 사짜 기술자를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농촌에서는 집을 짓는 요령이라도 알아야 사기를 당하지 않고 집을 제대로 지을 수가 있습니다.


▲ 제주 시골 집을 수리하는 모습. 리모델링을 하는 대부분의 귀농인들은 전기,욕실,상하수도 시설은 업자에게 페인트.도배,장판,조경 등은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제살모 카페


오래된 시골집을 구입해서 리모델링 할 때는 손재주가 없음을 더 한탄하기 시작합니다. 전문 기술자가 해야 하는 전기를 제외하고는 사실 혼자서도 집을 지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손재주가 없으면 모두 업자를 불러야 집수리를 해야 합니다.

시골에 살다 보면 아무리 집을 잘 지어 놓아도 수리, 보수할 일이 생깁니다. 도시에서야 하수구가 막히면 전화 한 통화로 해결되지만, 제주와 같은 곳에서는 사람을 불러도 잘 오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수구 하나 뚫으려면 출장비에 수리비에 재료비로 5~10만 원은 그냥 나가기 일쑤입니다.

결국, 귀농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주인의 손이 거쳐야 하니, 귀농인들은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제일 부러울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귀농인들 모임에 가면 혼자서 보일러도 고치고, 바닥도 깔고, 붙박이장도 척척 만드는 손재주를 가진 사람은 남자,여자 할 것 없이 존경(?)의 대상이 되거니와, 부인들은 손재주 없는 남편을 타박하기도 합니다.


' 돈 많은 사람보다 연장 많은 사람이 부러워'

귀농하면 뜻밖에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필요한 기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짓기 위한 트랙터와 같은 고가의 장비 말고도 농촌에 살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장비들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가장 먼저 시골에서 예취기는 필수입니다. 집이건 작은 텃밭이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시골에서 농약을 치지 않고 살려면 풀은 무조건 어느 정도는 깎아 줘야 합니다.

무엇인가 만들기 위해서는 컷팅기와 콤프레샤와 건타카가 필요하고, 대문이 떨어지거나 처마를 수리할 때는 용접기가 필요합니다.

장작 난로나 불을 피워 고기라도 구워 먹기 위해 나무를 하려면 전기톱이나 1톤 트럭과 같은 장비는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빌려서든 써야하는 장비입니다.  

물론 연장이 있는 사람에게 빌릴 수는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라고 매번 부탁하기도 미안해서, 시골에서는 이런 장비나 연장이 있는 사람이 갑이 되기도 합니다.

▲ 좌측 동력 농약분무기,우측 텃밭 비닐까는 기계. 출처:인빌뉴스


농사를 지을 때는 장비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농약을 살포할 때 사용하는 동력 분무기는 기본이고, 밭에 비닐을 까는 기계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최소한 삽모양으로 씨앗을 심는 장비라도..


장비와 연장이 없어도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장비가 있다면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이 연장이 없어 반나절이나 하루씩 걸린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장비,연장 탓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귀농한 사람들은 통장에 돈이 많은 사람보다 창고에 한가득 연장과 장비가 있는 사람이 제일 부럽습니다.

' 나는 돈주고, 누구는 공짜로 먹거리 만드는 귀농'

귀농하면 여유롭게 살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 귀농하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대신에 도시보다는 부지런히 움직인 대가를 제대로 받는 삶이 귀농입니다.

▲귤로 만든 귤양갱(좌측)귤쨈(우측) 출처:제살모 카페


제주에서는 감귤철이 되면 상품성이 떨어지는 귤들이 많이 나옵니다. 솜씨 좋은 사람들은 그런 귤을 모아 귤 양갱을 만들기도 귤 쨈을 만들기도 합니다. 


무가 나오는 철에는 밭에 버린 무를 가지고 무말랭이나 시래기를, 당근이 많이 나오면 당근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재주가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먹거리가 더 풍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낚시로 잡은 생선과 문어. 출처:제살모카페

아이엠피터가 아내에게 구박 받는 일이 생기는 경우가 누가 낚시로 생선이나 문어를 잡아 올린 사진을 볼 때입니다. 섬에서 살고 있지만, 낚시를 하지 못하는 아이엠피터에게 낚시로 생선을 잡는 일은 글 100편 쓰는 일보다도 어렵습니다.

아내 입장에서야 돈 주고 사 먹는 생선을 누구는 척척 낚시로 잡아 온다고 하니, 배도 아프고 부럽기도 할 뿐입니다. (사실 아이엠피터가 낚시를 해보긴 했지만, 왜 고기들은 제 낚싯대만 싫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부지런만 하면 쌀 빼고는 살 필요가 없기는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마트에 가서 당근도 사고, 파도 사고 무도 사야 합니다. 그래서 텃밭 농사도 잘 짓고 낚시도 잘 짓고 요리 잘 하는 사람이 돈도 아끼고 먹거리도 풍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콩을 털때 쓰는 도구는 몽둥이가 아니라 3단 호신봉이다.


장비가 없어도 손재주가 없어도 귀농해서 못 살지는 않습니다. 다만 불편하고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런 재주와 연장이 없다고 귀농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사로 평생 일하다 귀농해서 내려와 손재주 없이 고생하다가 이제는 준 용접 기술자 정도로 용접과 기계 수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나이 60에 목공 기술을 배워 손주들이 내려와 타고 노는 그네를 만드는 사람도 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귀농하면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일상의 행복으로 느끼며 살 수 있는 여유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 70~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50대에 귀농한 사람도 한 10년 목공 기술을 배우면 60세때부터는 어느 정도 목공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귀농해서 빨리 정착하고 성공하려는 욕심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여유를 가지고 귀농을 하는 편이 훨씬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 호스로 물장난을 치는 에스더(만 3살)는 분무방법을 3년 만에 터득해서 자유자재로 물놀이를 즐긴다.


제주에 내려온 이후로 다양한 귀농,귀촌인들을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부러워할 만한 손재주를 가진 사람도, 트럭부터 시작해서 온갖 장비가 많은 사람도, 뛰어난 요리 솜씨로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부러울 만한 손재주와 능력자이지만, 가장 공감이 가는 사람은 귀농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시골에 사는 현재까지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기술이 없으면 배우면 되고, 손재주가 없으면 시간을 두고 노력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인생의 행복을 얻는 사람이 됩니다.

2014년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현실과 이상을 잘 조화시키겠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