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되면 엄마,아빠는 늘 고민에 빠집니다. 도대체 올 여름방학에는 어디를 데리고 갈 것이냐입니다. 특히 제주에 사는 아이엠피터 가족은 여름이라고 남들처럼 따로 휴가를 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매번 가는 바다와 산보다 육지를 더 가고 싶어 합니다.
다행히 Daum에서 주최하는 '생태교통 수원 2013' 전국파워소셜러 생태교통 팸투어에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아 지난 여름방학에 수원을 다녀왔습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제주 산골에 사는 아이엠피터 가족의 지난여름 휴가이야기입니다.
'무궁화가 이렇게나 많이 있어요?'
아이엠피터 가족이 맨 처음 찾은 곳은 무궁화 축제입니다. 전국의 다양한 무궁화를 모아 놓은 축제인데, 요셉이가 특히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무궁화에 대해 배웠지만, 실제 무궁화를 본 적은 외갓집이 처음이었습니다.
아직 꽃이 뭔지, 무궁화가 어떤 꽃인지 모르는 에스더에게는 그냥 장난감에 불과하겠지만, 요셉이는 무궁화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지 처음 봤습니다.
무늬만 여자아이 에스더는 무궁화보다는 마치 아이들이 노는 모양으로 만든 조각상을 똑같이 따라 하기에 바빴지만, 요셉이에게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눈으로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저수지를 처음봤어요'
매일 바다만 보다가 광교저수지를 처음 본 요셉이가 한 말입니다. 바다와 저수지,산과 오름은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한라산과 오름,바다 이외에 큰 산이나 저수지를 본 적이 없는 요셉이는 광교산과 저수지는 물론이고 수력발전으로 가로등이 켜지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습니다.
광교저수지의 수변산책로는 데크가 설치돼, 걷기도 편하고, 바다와는 또 다른 시원함을 선사했습니다. 가뭄으로 수원지가 말라버린 제주에 비해 광교저수지는 물도 많고 분수도 뿜어져 나와 아이들은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둘기와 분수 놀이터를 처음 봤어요'
맨날 까치,제비,까마귀만 보던 에스더는 비둘기를 처음 봤답니다. 도시에서야 흔한 비둘기이지만, 에스더에게는 이렇게 사람 가까이에 새가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의아했습니다.그래서 비둘기를 어떻게 하면 만져볼까 자꾸 비둘기 주변을 맴돌기도 했으며, 날아가는 비둘기를 잡겠다고 몇 번이고 뛰어다녔습니다.
아무리 비둘기가 신기해도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것은 물놀이입니다. 바다에서 즐기는 물놀이와 다르게 화성행궁에 설치된 분수 놀이터는 몇 시간을 놀아도 지루하지 않는 신나는 놀이터였습니다.
섬에서 살면서 굳이 수원까지 가서 저렇게 물놀이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자연은 자연대로 도심 속의 모습은 그 모습대로 각자가 가진 매력이 있답니다.
특히 많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듯이, 화성행궁 광장 앞 분수는 주말이라 아이들과 가족들이 나와 놀고 있었는데, 에스더는 언니,오빠들하고 함께 노는 놀이터에서의 물놀이는 처음이라 자기 세상인양 너무 신났습니다.
아직 세 돌이 지나지 않아 기저귀를 차고 놀다가 방수기저귀가 아니라 엉거주춤 하던 에스더는 엉덩이로 전해지는 분수의 수압은 무언지 모를 짜릿함과 거대한 비데와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참 잘 먹는 아이들'
에스더 사진의 대부분은 먹는 사진입니다. 일단 먹방의 지존인 배우 하정우씨와 맞먹게 잘 먹습니다. 보리밥,나물,회,족발,순대, 뭐 가리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맛있느냐 없느냐만 구분하는 에스더에게 오랜만에 먹는 한우와 갓 튀겨낸 치킨은 아주 환상적인 맛이었습니다. (제주는 치킨 배달이 되지 않아 가장 가까운 읍내에 가서 사와도 식어버린다)
아빠가 돈이 많이 없어서 비싼 음식을 사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늘 무엇이든 잘 먹는 아이들을 보면 한번쯤은 무리를 해서라도 맛난 음식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아빠인가 봅니다.
오랜만에 한우를 보고 침을 삼키며 좋아라하는 요셉이를 보면서, 이거 어디 가서 일당이라도 뛰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음악도 있었나요?'
요셉이는 학교에서 클라리넷을 배웁니다. 음악의 소질이나 관심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악기를 배우니 은근 TV방송에 나오는 연주자들을 유심히 봅니다.
수원 화성행궁에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정도 '야한음악회'(무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열리는데 다행히 근처 수원호스텔에 머물던 아이엠피터 가족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전자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본 요셉에는 '아빠, 이런 음악도 있었나요?'를 연발하며, 지루해하는 엄마와 다르게 조금 더 듣고 가자며 자리를 떠날줄 몰랐습니다.
학교 행사나 제주시까지 나가야 음악을 듣고 볼 수 있었던 요셉이에게, 세상에는 자신이 아는 음악 이외에 다양한 음악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바로 여왕?'
에스더가 수원 화성행궁에서 걸어가고 있는 길은 왕만이 다닐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요셉이는 설명을 듣고 밑으로 갔지만 에스더는 꿋꿋하게 진짜 여왕처럼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책으로 보던 해시계를 처음 본 요셉이는 그림자와 시계를 번갈아 보면서 현재 시간을 계산하느라 바빴습니다. 수원 화성행궁을 두 번째 왔던 아빠는 나름의 설명을 해주다가 막혀, 다음에는 꼭 해설사분의 도움을 받으리라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역사를 어설프게 공부하면 오히려 더 이상해집니다. 가끔 요셉이가 한국전쟁이나 제주4.3에 대한 질문을 하면 어떻게 설명을 해줄까 난감해하기도 하면서 ( 그 안에 있는 복잡한 이념 대립이나 갈등, 그리고 아픈 상처를 단순히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기에) 이제 슬슬 요셉이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빠, 우리가 갖고 온 쓰레기는 갖고 가야지'
수원천은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지난 번 수원천을 방문했을 때와는 계절이 달라서 그런지 생동감이 넘치기도 했으며, 무더운 날씨 탓인지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수원천에는 동성중학교 학생과 학부모,교사들이 주위를 청소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요셉이는 관광지인 제주에 살면서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자주 봐서 그런지, 누나,형들이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 이런 데 와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참 나쁘다'는 말을 합니다.
아무리 지자체가 정비를 잘해도 결국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의식이 뒤따르지 않으면, 금방 무너지는 것이 생태계입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자연을 지켜주는 일이 어른들의 몫이고, 아이들이 자라면 그들도 아빠,엄마처럼 후손들을 위해 자연을 지켜줘야 계속 자연이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작품, 다른 아이들'
수원 영동시장에는 '아트포라'는 예술공방이 있습니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예술인들이 재래시장 2층에 모여 공방을 운영하는 형태입니다.
여기에는 각종 폐자재를 활용한 생활용품들이 있었는데, 같은 작품이라도 요셉이와 에스더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랐습니다.
곰 인형이 있는 의자를 봐도 에스더는 귀엽다고 안아주고 뽀뽀하지만, 요셉이는 발을 꼬아 건방진 곰돌이를 만들기도 하고, 스키로 만든 흔들 의자에 앉아도 요셉이는 신이 나게 발을 구르고 에스더는 공주처럼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세상을 보는 요셉이와 에스더의 시선도 이렇게 다를 것입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다 다를 수도 있고, 다르다는 틀리다가 아니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각자만의 생각이 나쁜 것이 아닌 개성에 따른 자유로움을 찾으며 컸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수원에 가서 아쉬웠던 점은 9월1일부터 하는 '생태교통 수원 2013'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정치] - '생태교통 수원?' 난 반대야, 밥 먹기도 힘든데
[시사] - 미친 수원시장, 행궁동의 자동차를 모두 없앤다고
진짜 자동차를 다니지 못하게 하면 그 마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도시와 자연,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지 그 대안을 꼭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우면 가볼 수가 있겠지만, 제주에서 수원 가는 일이 쉽지가 않기 때문에 방송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나, 수원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꼭 한 번 가보시고, 아이엠피터의 포스팅의 문제점은 없었는지, 수원시가 제대로 했는지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남들은 제주로 놀러 가지 못해 안달인데, 왜 굳이 수원까지 와서 휴가를 즐기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자라는 요셉이와 에스더에게 제주말고도 더 넓은 세상, 다양한 모습의 사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빠가 젊은 날 많은 것을 경험하며 돌아다녔듯이, 우리 요셉이와 에스더도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그저 책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느끼며 찾기를 원했습니다.
어쩌면 아빠,엄마는 아이들이 달릴 길만 보여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길을 달리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고, 엄마,아빠는 그저 뒤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볼 뿐입니다.
아이엠피터는 요셉이와 에스더가 세상을 마음껏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넘어져서 흙투성이가 되어도 벌떡 일어나 다시 힘차게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이 아빠,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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