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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정치 개입했지만.부정선거 아니다?' 정치깡패와 국정원



국정원의 18대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모씨 등이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검찰로 보냈습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4월 18일 국정원 직원 김씨와 일반인 이씨 등 3명을 국정원법 위반 (정치 관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씨를 비롯해 국정원 심리정보국장 A씨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심리정보국장 A씨는 그동안 국정원 직원들의 인터넷 활동을 지시했는지 조사하기 위해 두 차례나 소환통보를 했으나 불응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수서 경찰서 이광석 서장은 "게시글을 분석해 볼 때 정치 관여 행위는 인정할 수 있지만,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면서 국정원이 대선 기간에 정치에 개입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해괴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선일보는 4월19일 기사에서 마치 국정원의 댓글이 정치개입이 아니라고 했지만,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시민단체 사무국장은 선거법 위반 유죄를 받은 바 있다.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와 다르게 국정원 김씨는 지난해 12월 5일부터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사람조차 대한민국을 남쪽정부라고 부른다'는 내용으로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글을 3편이나 올렸습니다. 

일반인이 그저 자기 생각을 표현했어도 선거법 위반이었는데,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여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행위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괴한 해석이 나왔습니다.

2007년 선관위는 인터넷 논객 등 네티즌 618명을 선거법 93조 위반 혐의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습니다. 그들이 올린 글이 대선 후보, 특히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비방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국민이 정치적 표현을 하면 선거법 위반이지만, 국정원은 단순한 정치 개입에 불과하다는 경찰 수사를 보면서 대한민국 법은 고무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4.19 혁명의 시작, 3.15 부정선거, 그리고 제3대 대통령 선거'

오늘은 4.19 혁명 53주년입니다. 4.19 혁명은 이승만의 독재 정치가 근간이었지만,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4.19 혁명의 계기였습니다. 3.15 부정선거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보려면 우선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를 살펴봐야 합니다.

 


1956년 5월에 열린 제3대 대통령 선거 및 제4대 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그대로 표현된 선거였습니다. 계속된 이승만의 독재 정치에 대해 민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 구호를 통해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도전했는데 이런 민주당 신익희의 모습은 많은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습니다.

또한, 진보당 대통령 후보 조봉암은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며 이승만의 반공통일과 전혀 다른 통일론을 주장하며 파문을 일으켰지만 뜻밖에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비록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선거운동 중에 갑자기 사망하면서 이승만이 재집권했지만, 당시 이승만이 득표했던 504만여표와 함께 신익희가 기표된 무효표가 무려 185만표가 나온 점은 이승만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서울에서 이승만은 20만여표를 득표했지만 무효표가 28만여표 나와, 만약 신익희가 살아 있었다면 이승만의 낙선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정,부통령 선거를 따로 했던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였던 민주당 장면이 자유당 이기붕을 무려 20만여 표 차이로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됐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1956년 선거 결과를 놓고 정권 재집권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하려고 계획했고, 그것이 바로 3.15부정선거의 배경이 됐던 것입니다.

▲국정원 정치개입 예상도, 출처:한겨레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자행된 것이 아닙니다. 2010년부터 슬슬 제기된 정권 재교체에 대한 여론이 불거지자 시작된 것입니다.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 홍보 등이 단순한 홍보가(아니 왜 국정 홍보를 국정원이 할까요? 대한민국 정보기관은 광고회사?) 아니라는 사실은 민심이 정권 재교체로 돌아서는 2009년 'MB맨' 원세훈이 국정원장에 취임하고 난 뒤 2010년부터 시작됐다는 점으로 알 수 있습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신익희에게 사실상 대패했기 때문에 3.15부정선거를 자행했듯이 국정원도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재집권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직적인 선거 개입을 했습니다. 결국, 4.19혁명이 일어난지 53년이 됐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불법 선거가 이루어졌던 국가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 3.15 부정선거의 숨은 공신, '정치깡패'

4.19혁명의 배경이었던 3.15부정선거의 시작은 자유당 이기붕 때문입니다. 이기붕은 자신이 부통령으로 당선되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줄 이승만조차 대통령으로 당선될 확률이 낮자, 부정선거를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놓고(그러나 3.15부정선거를 보면 거의 모든 국가기관이 조직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부정선거를 자행할 수 없으니, 깡패를 내세워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합니다.

▲1960년 4월 18일 정치깡패 100여명은 3.15 선거 무효 시위를 벌인 고려대생을 무참히 폭행했다.


1960년 2월 13일 영등포구청에서는 장택상의 대통령 후보 추천서류를 깡패들이 난입해 빼앗는 테러가 발생합니다. 당시 이를 취재하던 사진기자 수명은 깡패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카메라가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1960년 3월 7일에는 민주당 경남도당부 거제군당 선거사무장이 반공청년단 소속 깡패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고,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수천명이 '3.15 선거 무효'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이자, 대한반공청년단과 유지광 휘하 화랑동지회 깡패들이 쇠갈고리와 곡괭이 등을 휘두르며 고려대생을 집단 폭행했습니다.

▲1957년 장충단 공원에서 열린 야당 시국강연회에 깡패들이 난입해 연단을 불태우고 폭행하는 테러를 벌였다.


정치깡패들은 대통령 선거에 직접 개입도 했지만, 선거 전부터 각 지역에서 민심을 조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이승만을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폭행했고, 민주당에 선거 자금을 대려는 지역유지들에게는 회사와 가게에 난입하여 협박도 일삼았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한참이나 남았던 1957년 자유당의 사주를 받은 정치깡패들은 야당이 주최하는 장충단 공원 시국강연회에 난입하여 연단을 불태우고 참가자들을 폭행하는 테러를 자행합니다. 당시 주범이었던 유지광은 재물손괴죄로 구속됐습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이 선거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국정원 직원을 '국정원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1957년 장충단 집회 방해는 정치깡패가 벌인 사건을 보면 선거 개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사건은 조직적인 정치 개을 통한 포괄적인 선거 개입이자 부정선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3.15부정선거는 단순히 대통령 선거기간에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여론을 조작하고 야당을 탄압하고 민심을 협박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 권력자의 영원한 충신이자 행동대장 정치깡패' 

3.15부정선거의 숨은 공신이었던 정치깡패의 특징을 보면 권력의 비호와 특혜를 받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1960년 2월 10일 대한반공청년단은 자유당으로부터 1억환의 정치자금을 받았는데, 반공청년단은 전국적으로 조직을 확대했고, 자유당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정치에 개입했습니다.

깡패 대부분이 반공청년단에 가입하면서 결국 반공청년단은 합법적인 깡패들의 조직이 됐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유지광을 멋진 남자로 표현했지만, 사실 유지광은 법정에서 임화수,이정재가 선거 개입을 발뺌하자 울먹거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3.15부정선거의 핵심 깡패가 유지광인줄 알고 있지만, 유지광은 대학물을 먹은 인텔리 깡패였다는 극적인 사실과 유일하게 사형을 받지 않고 살아남아 철저히 본인이 미화된 자서전을 냈기에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뿐입니다.

또한 이정재는 이미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기붕과 정치적 갈등(서대문 갑에 출마하려던 이기붕은 자신의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해지자 이정재의 고향 이천으로 출마지역을 옮겼다)때문에 힘을 잃었고, 임화수가 그 모든 정치깡패로서의 힘을 이어받았습니다.

▲정치인들과 함께 이승만에 절 하는 임화수


유지광이 그저 행동대장에 서열 10위에 불과한 인물이었지만 임화수는 이승만과 직접적인 교류가 있을 정도의 핵심 거물이었습니다. 명색은 반공청년단 종로 지부장었지만, 그의 집에는 경찰서 경비전화가 설치됐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전화기 자체가 설치 어려운 면도 있지만, 끊기지 않고 직통으로 연결되는 경비전화는 관공서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임화수가 타고 다니는 지프차 번호를 신임 경찰들은 무조건 외워야 할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교통 범칙금을 떼지 못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찰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자유당 이기붕과 경무대 곽영주, 그리고 이승만까지 이어지는 그의 정치적 배경에 있었습니다.

 

' 정치깡패의 몽둥이와 반공예술인단, 국정원의 대북심리전단'

1959년 1월 발족한 대한반공청년단은 신도환을 단장으로 총재에는 이승만, 부총재에는 이기붕을 추대하며 조직됐습니다. 이들은 임화수가 조직을 운영하면서 야당의 정치 활동에 대한 테러와 폭행을 가하며 자유당 정권의 행동대로 활동합니다.

▲이승만 청년단 총재의 세포조직 확장 지시사항(좌)반공쳥년단 깡패들의 테러(우)


반공청년단이 야당 사무실을 습격하고 야당 인사를 폭행하고 선량한 시민에게 협박을 줘도 절대로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고 설사 경찰이 출동한다고 해도, 그들은 반공청년단을 체포하지 않고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습니다.

테러를 자행하는 깡패들의 조직이었던 청년단 총재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부가 아니라 범죄자들의 아버지에 불과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승만의 반공예술인단 접견 기념 사진(좌)제4대 대통령 출마 이승만 환영 예술인대회(우)


1959년 3월에는 임화수를 주축으로 '반공예술인단'이 결성되고, 연예인들이 전국을 돌면서 춤과 노래,공연을 벌이며 이승만을 옹호하고 야당을 비난합니다. TV가 없던 시절 가수와 코메디언 등의 연예인들의 구경거리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었고, 이는 지금으로 말하면 심리전과 같은 효과를 보였습니다.

심리전하니 국정원의 대북심리전단이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1960년 대통령 선거에는 이승만의 반공예술인단이 전국을 누비며 예술인들 동원한 심리전을 펼쳤고, 2012년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심리전을 펼친 것입니다.

▲임화수가 법정에서 가벼운 판결에 살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좌)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MB(우)


오늘은 4.19혁명 53주년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4.19혁명의 숭고한 희생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까? 물론 조금이나마 당시의 민주주의 열망은 이어지고 있지만 53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들의 피 값에 비해 완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60년 정치깡패가 몽둥이와 연예인단을 동원해 테러와 심리전으로 정치에 개입했던 사건과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본질에서 무엇이 다릅니까? 정치에 개입했지만 부정 선거는 아니라는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를 보면 반공청년단이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폭행해도 먼 산만 바라보며 서 있던 경찰이 생각납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읍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뻐해 주세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 4·19 혁명에 참여, 희생된 당시 한성여자중학교 학생, 진영숙(16세)의 마지막 편지"

어쩌면 우리는 어린 학생보다 더 철이 없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4.19혁명때 희생당했던 모든 분께 미안하고,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4.19혁명 53주년 아침입니다.